표백제16회한겨레문학상수상작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장강명 (한겨레출판사,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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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소득 2만 불 시대라는 번지르르한 겉옷으로 포장돼 있지만 오늘날의 청년은 기실 텅 비어있다. 이제 아무도 그들에게 명령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지 못하며, 알았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내적 지향을 쫓아 일관되게 사는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들은 자본주의 세계화에 의해 '표백'됐기 때문이다.  《표백》은 '화염병'을 들었으나 투척할 곳조차 찾을 수 없는 이 시대 텅 빈 청춘들의 초상, 그 메아리 없는 절규를 속필로 받아쓴 소설이다. 섬찍하면서 슬프다. ㅡ 박범신 (소설가)

  추천사가 인상깊어서 읽게된 책.
한겨레문학상수상작인데 저자(장강명)가 동아일보 기자인 것도 특이했다.

  전체적으로 세연의 잡기 속 주인공 재키, 제리, 하비, 재프리더, 소크라테스, 루비, 메리 그리고 적그리스도의 이야기와 잡기 밖 현실의 세연, 세화, 선우, 휘영, 병권, 윤영(추), 화자(나)의 이야기로 이루어져있다.

'빅 그레이트 화이트 월드'

완성된 사회, 잡기 속에서 재키는 이 사회를 '빅 그레이트 화이트 월드' 라고 이야기한다.

"너무너무 완벽해서 내가 더 보탤 것이 없는 흰색. 어떤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이미 그보다 더 위대한 사상이 전에 나온 적이 있고, 어떤 문제점을 지적해도 그에 대한 답이 이미 있는. 그런 끝없이 흰 그림이야. (중략) 누군가 밑그림을 그린 설계도를 따라 개선될 일은 많겠지만 그런건 행동대장들이 할 일이지. 참 완벽하고 시시한 세상이지 않니?"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에서 야심있는 젊은이들은 위대한 좌절에 휩싸이게 되지.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우리 자신이 품고 있던 질문들을 재빨리 정답으로 대체하는 거야. 누가 빨리 책에서 정답을 읽어서 체화하느냐의 싸움이지. 나는 그 과정을 '표백'이라고 불러"



전혀 이 책에 대한 정보없이 봤었던 터라 책을 읽는 내내 당혹스러웠다.
이런 내용일 줄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서의 화자에 공감하기도 하고, 재키의 '빅 그레이트 화이트 월드'의 개념에도 공감했다. 읽을 수록 빠져들었다.

비단 미술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여기저기에서 젊은이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창의성과 리더쉽,
그리고 도전정신.

하지만 재키의 말대로 이 세상은 '빅 그레이트 화이트 월드'이다.
어찌됐든 이미 많은 사상과 이념이 여러 번 뒤집히고 나름대로 완성된 지금의 사회다.
'어른'들은 젊은이들에게 도전정신과 창의를 강요하면서 실상은 젊은이들을 '표백'시킨다.

작품 안에서 세연은 '사회'에 대한 반발로 자살선언·와이두유리브닷컴 계획을 실행한다.
남부러울 게 없는, 자신의 최고위치에서, 사회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아닌 자살로써 기존의 사회체제를 전면적으로 부정한다.
적그리스도는 자살선언에 반박하기 위해 '5년뒤, 3년뒤 멋진 일을 보여주겠다'고 이야기한다.

-
개인적인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야기해보자면,
나는 큰 꿈이 없는 사람이다. 큰 삶의 목표도 없고, 큰 인생의 재미도 없는 사람이다.
일단은 살아가니까 살아있는 그런 하등한 존재인데,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내 존재의 무력함과 생각했던 것보다 사회는 견고하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그 당시에 자살충동도 많이 들었다. 아마도 사춘기가 뒤늦게 온 것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표백》안에서 처럼, 패배자에 가까운 내가 자살을 하게 되면 그저 자기 자신과 사회로부터의 도피밖에 안될 것같았다.
그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자살일 뿐. 사회적인 문제가 되진 않는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나는 이 사회에 어떠한 흔적을 남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미술전공자인데 창의력이 쥐뿔도 안나오는걸 어떡하라고. 그림을 때려쳐야지. 졸업과 동시에 붓도 놓아버렸다.
어렸을 때는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나이가 먹을 수록 현실과 타협하고 꿈은 점점 작아지다 못해 사라졌다. 꿈도 목표도 이유도 없이 살아만 있는 일상.

《표백》안의 화자와 나는 꽤 닮은 구석이 있다.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학교에 들어가고... 
안한거지, 못한게 아니라고.

지금의 내 친구들을 보면 《표백》안의 화자처럼 공무원준비를 하는 친구들이 꽤 많다.
위대한 목표보다는 편안한 길을 택하는 친구들이 많다. 내 친구들뿐만이 아니더라도. (그렇다고 공시가 편하다는건 아니다. 공무원 경쟁률을 봐라.)

《표백》안의 세연과 달리 나는 위대한 자살선언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세연처럼 논리적으로 '빅 그레이트 화이트 월드'의 체제를 부정할 수도 없다. 나는 사회를 부정할 자격이 없는 사람인가? 
그렇다고 '자살선언'을 반박할 만한 인생을 내가 살 수 있을까?
모르겠다. 

처음 책을 읽을 동기부여를 해준 추천사의 문장이 다시금 떠오른다.

'화염병'을 들었으나 투척할 곳조차 찾을 수 없는 이 시대 텅 빈 청춘들의 초상, 그 메아리 없는 절규를 속필로 받아쓴 소설이다. 섬찍하면서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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